'분류 전체보기'에 해당되는 글 35건

  1. 2023.06.23 내 것 잘 쓰는 일
  2. 2023.05.24 공력空力 2
  3. 2023.02.13 觀, 江
  4. 2023.02.13 세월 LES ANNÉES
  5. 2023.01.17 그리움
  6. 2023.01.08 반응
  7. 2023.01.02 결심 2
  8. 2022.12.31 선물
  9. 2022.12.30 두께
  10. 2022.12.21 닿자 그리고 놓자

군민이 보고 싶은 영화를, 군민의 선택으로!

 

한 달에 한 번 있는 ‘문화가 있는 날’만이라도, 장흥군민이 보고 싶은 영화를, 장흥군민의 선택으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장흥에는 장흥군의 문화•복지•체육시설 등이 모여 있는 ‘장흥국민체육•여성향상센터(장흥읍 흥성로 43)’가 있다. 흔히 장흥국민체육센터라고 부르는 이 센터(건물과 시설)는 장흥군 소유다. 장흥군 소유의 시설이라는 것은 장흥군민들 소유의 시설이라는 말과 같다고 할 수 있다. 장흥군민이 장흥군민들의 것을 잘 쓸 수 있도록 장흥군 의회와 행정이 적절한 역할을 하면 좋겠다. 주민자치의 시대이지 않은가.

 

‘장흥국민체육•여성향상센터’ 1층에는 수영장이 있고, 2층에는 정보화교육장이 있고, 3층에는 체력단련실이 있고, 4층에는 전라남도에서 1호로 설립된 총 99석 규모의 작은영화관 정남진시네마가 있다. 2015년 10월 19일 개관식 때는 전라남도 도지사도 왔을 정도로 ‘문화 향유’에 대한 관심이 지대했다.

 

전라남도에는 우리 장흥을 포함하여 고흥, 보성, 곡성, 화순, 영광, 영암, 해남, 완도 등 9개 군지역에 작은영화관이 있다. 영암군은 대불에도 작은영화관 개관을 준비하고 있고, 무안군도 작은영화관 개관을 준비하고 있다. 내년이면 10개 군에 11개소의 작은영화관이 운영될 것이다.

 

정남진시네마는 「장흥군 사무의 민간위탁촉진 및 관리조례」, 「장흥군 공유재산 관리 조례」    「장흥군 작은영화관 정남진시네마 운영관리 조례」에 따라 운영 능력과 조건을 갖춘 수탁운영자를 공모하여 위수탁 계약으로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유)씨네드림’이 수탁운영자로서 우리 장흥군의 ‘작은영화관 정남진시네마’를 2023년까지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수탁기간이 언제까지인지 정확한 날짜는 모르겠다. 계약한 기간이 끝나면 다시 수탁운영자 공모를 할지, 그대로 연장을 할지, 수탁운영조건을 어떻게 할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볼 일이다.

 

비록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민간 영리기업이 작은영화관을 운영한다고 하더라도, 한 달에 한두 번은 장흥군민이 보고 싶어 하는 영화를 볼 수 있도록 수탁운영 조건에 명시하여 위수탁계약을 하면 좋겠다.

 

정남진시네마에서 한 달에 몇 회의 영화가 상영되는지 궁금했다. 궁금한 것 많고 호기심 많은 성향인지라 여기저기 손품을 팔다 보니 ‘Kofic KOBIS(www.kobis.or.kr 영화관입장권통합전산망)’라는 웹사이트를 알게 됐다. 여기서 제공하는 통계를 통해 정남진시네마 상영내역을 알아봤다. 2023년 3월에 1관 139회, 2관 145회. 4월에 1관 136회, 2관 135회. 5월에 1관 130회, 2관 167회를 각 상영하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석 달의 통계에 비추어 보니 우리 장흥군 작은영화관 정남진시네마에서는 월 평균 284회의 영화를 상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한 달에 280여회 중 1, 2회는 우리 장흥군민이 보고 싶은 영화를 장흥군민의 선택으로 볼 수 있어도 괜찮지 않겠나.

 

2013년에 제정된 문화기본법에 따라, 매달 마지막 수요일 및 주간을 ‘문화가 있는 날’로 지정하여 운영하고 있다.

 

문화기본법 제5조(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책무)에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경제적•사회적•지리적 제약 등으로 문화를 향유하지 못하는 문화소외 계층의 문화향유 기회를 확대하고 문화 활동을 장려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책을 강구하”도록 하고 있다.

 

나는 우리 장흥의 작은영화관 정남진시네마에서 내가 보고 싶은 영화를 보고 싶다.

Posted by 곡인무영
,

공력空力

카테고리 없음 2023. 5. 24. 20:08
공력空力
功力•工力
‘달 궤도 탐사선’인 ‘다누리’호에 조금 관심을 둔 덕분에 ‘라그랑주 점(Lagrangian point_칭동점秤動點)’을 알게 됐다. 라그랑주 포인트는 두 개 이상의 천체에서 받는 인력이 상쇄되는 위치로, 중력이 ‘0’이 되는 지점이라고 한다.
오늘 해질녘에 태양동기궤도를 향해 위성 여덟 기를 탑재한 우주발사체 누리호를 발사하려고 했지만 문제가 발생해서 발사 취소를 결정하었다. 발사를 예정한 시간보다 3시간 전이다.
발사체를 일출-일몰 무렵인 해질녘에 발사하는 까닭은 위성이 밤과 낮의 경계면, 즉 여명-황혼궤도(dawn/dusk orbit)를 따라 돌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이는 큰 전력이 필요한 차세대 소형위성 2호가 24시간 내내 전력을 생산할 수 있도록 태양전지판이 태양빛을 받을 수 있는 위치에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게 다 발사체와 위성의 비행경로 등을 계산했기 때문이다.
달 궤도 탐사선인 다누리에 관심을 두고 있다보니 라그랑주 포인트를 알게 됐고, 우주발사체인 누리호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 덕분에 오늘은 밤과 낮의 경계면인 여명-황혼궤도에 대해서도 알게 됐고, 공력空力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공력空力은 움직이는 물체와 공기가 상호작용 하면서 발생하는 힘이라고 한다. 우주발사체인 누리호의 발사에 미치는 공력이 발생한다. 이 공력에는 세 가지 힘이 작용한다. 발사체가 비행하는 반대방향으로 향하는 항력이 있고, 발사체를 뜨게 하는 양력과 발사체의 옆면에서 발생하는 측력이 있다. 이 세 힘의 공력은 우주발사체 누리호의 비행에 영향을 미친다. 그래서 공력이 작용하는 지점과 발사체의 무게중심 간의 균형이 필요하다. 이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공력은 우주발사체의 형상과 궤도, 그리고 비행안정성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구심의 중력을 떨치고 우주로 솟아오르는 원심의 추력 뿐만이 아니라 공력空力에도 상응하는 功力과 工力이 필요하다.
사는 일도 다르지 않겠다. 중력과 같은 관습과 관계의 관성이 만연하게 누적된 세상(을 사는 사람들) 속에서 내 삶을 지향하며 내가 바라는 삶의 궤적을 원하는대로 그리며 살 수 있을까. 의지와 열정, 혹은 자본의 추력만으로 중력과 같은 관습과 관계의 관성 속에서 내가 지향하는 삶의 궤적을 누릴 수 있을까.
나에게 작용하는 중력과 공력空力을 살펴보고 계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내가 가지고 있는 추력과 내가 본 방향만으로 내 삶을 내가 원하는 궤적으로 그려낼 수는 없을 것이다. 궤적을 유지하려는 위성이 그렇게 하는 것처럼, 수시로 자세를 제어하는 힘을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중력과 공력空力 속에서 생각을 바라보며 생각하는 功力•工力을 갖추고 길러 쓰는 일. 이 일이 내가 마을을 도량으로 삼고 불목하니로서 삼판수행을 하는 일이다.
굿 해질녘 억불
//
덧, 나무위키에서 설명하는 공력은 아래와 같다.
功力
애를 써서 들이는 힘
(불교 용어)수행을 통해 얻은 힘
空力
(유체역학 용어)물체가 공기 중에서 운동할 때 작용하는 기계적인 힘으로 양력(lift)과 항력(drag)으로 구성된다. 공기력이라고도 한다.
工力
공부하여 쌓은 실력
Posted by 곡인무영
,

觀, 江

카테고리 없음 2023. 2. 13. 13:12

觀, 江

아니,
그렇다. 이것은 무엇인가 이것은 무너진 것인가
주저앉은 것인가 터진 것인가 넘치는 것인가 아니다.

이것은 흐르는 것이다
멈추지 않는 것이다 너머로 가는 것이다

아니다. 이것은 그리움인 것이다.
이어지는 것이다 기어이 가 닿으려는 것이다 그렇다.

Posted by 곡인무영
,



LES ANNÉES

사회를 바꾸기 위해 통합사회당에 남아 있었던 우리는 어느 날 갑자기 마오, 트로츠키주의자들, 엄청난 양의 이념들과 개념들을 알게 됐다. 사회적인 운동, 서적들 그리고 잡지들, 철학가들, 비평가들, 사회학자들이 곳곳에서 나왔다 : 부르디외, 푸코, 바르트, 라캉, 촘스키, 보드리야르, 빌헬름 라이히, 이반 일리치, 텔켈, 구조적인 분석, 서사학, 생태학. 어차피 '상속자들(피에르 부르디외 저서)'이건, 섹스 자세에 관한 스웨덴 소책자이건, 모두 새로운 지식과 세상의 변화를 향하고 있었다. 우리는 고개를 어디에 둬야 할지 모르고 전대미문의 언어들 속을 헤엄쳤으며, 이 모든 것들을 이전에 들어보지 못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했다. 한 달 만에 몇 년을 따라잡았다. 낡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더 공격적인 것들, 감동적인 것들, 더는 새로 배울 것이 없어도 터번을 쓴 보부아르와 사르트르를 되찾았음에 안도했다. 앙드레 브루통은 안타깝게도 2년 일찍 세상을 떠났다. (LES ANNÉES by ANNIE ERNAUX ©EDITION GALLIMARD, 2008 / 세월 ©1984BOOKS 2019 / 아니 에르노/신유진 옮김 131, 132쪽)

지금까지 당연하다고 여긴 것 중에 어느 하나도 자명한 것은 없었다. 가족, 교육, 교도소, 직장, 휴가, 광기, 광고, 모든 현실은 검토를 받게 됐다. 비판하는 자의 말도 마찬가지로 '지금 네가 말하고 있는 곳은 어디인가?' 라는 물음으로 자신의 근본, 가장 깊은 곳을 살피기를 요구받았다. 사회는 순진하게 기능하기를 멈췄다. 차를 사고, 해야 할 일들을 적고, 출산하는 것, 모든 것이 의미가 있었다.

이 지구상의 어떤 것도 우리에게 낯선 것이 되어서는 안 됐다. 대서양, 브뤼에 앙 아르투아의 범죄사건, 알렌드의 칠리, 쿠바, 베트남, 체코슬로바키아 우리는 모든 투쟁에 참여했다. 제도를 평가했고 모델을 찾았다. 우리는 보편화된 정치적 시각으로 세상을 읽었다. 가장 중요한 단어는 <<해방>>이었다. (세월 132, 133쪽)

중략

우리는 일종의 취한 상태에서 마약, 환경오염 혹은 인종차별주의를 주제로 두 시간 동안 이어진 토론을 마치고 나오면서 학생들에게 아무것도 가르친 것이 없는 것이 아닌가, 헛수고가 아닐까 하는 의심을 품었다. 그러나 어쨌든 학교는 무언가에 쓸모가 있었다. 우리는 끝도 없이 묻고 또 물었다.

생각하고, 말하고, 글을 쓰고, 일하고,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기 : 우리는 모든 것을 시도해도 아무것도 잃을 게 없다는 판단을 내렸다.

1968년은 세상의 첫해였다. (세월 134쪽)

#

지금 그 사람은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

바람이 불고
비가 올때도
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

사랑은 가도 옛날은 남는 것

여름날에 호숫가
가을에 공원 그 벤치위에
나뭇잎은 떨어지고
나뭇잎은 흙이 되고
나뭇잎에 덮여서
우리들 사랑이 사라진다해도

내 가슴에 있네
내 서늘한 가슴에 있네

#

1940년 생이니까 황모님 또래다. '아니 에르노'가 2008년에 쓴 소설 <세월>을 읽고 있다. 손바닥만한 <세월>을 바랑에 담은 지가 한참 전인데도 여태 가지고 다닌다.

나도 내 한 삶의 흔적을 이렇게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는 게 생각났다. '성장소설'이라는 정채봉의 소설 '초승달과 밤배'를 봐서 그랬을까. 내 삶을 '소설처럼' 정리하고 싶었다. '소설처럼'이라는 말 속에는 솔직하게 쓰는 '일기처럼'이라는 뜻이 있다.

나도 흉내를 내본다.

1979년은 세상의 첫해였고, 1982년은 삶의 시작이었다.

1979년 6월 6일과 그해 겨울, 그리고 1982년 5월 5일. 흑석동 용두봉, 仁悳法壇에서 보냈던 시간들과 격은 일들.

그리고, 그리움.

아득한 이 그리움. 연원을 알 수 없는 이 그리움. 어디서 어떻게 비롯했는지 알 수 없고, 어디를 향하는지 어디에 닿으려고 하는지도 알 수 없는 그리움. 비워지지도 않고 채워지지도 않는 꽉 찬 이 그리움.


바라아제

Posted by 곡인무영
,

그리움

카테고리 없음 2023. 1. 17. 21:30

그리움

저기 저 붉은색 경계선을 보는데
불쑥 '그리움'이라는 것이 떠올랐다.

무슨 그리움인지 어떤 그리움인지
무엇에 대한 그리움인지 모르겠지만
저 너머 환한 데 가면 이 그리움이 가실까.

언제 생겼는지 모르고
왜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이 그리움
문득 이 그리움을 잊고 있었다는 걸 방금 알았다.

저기 저 멀리에서 보여주는
붉게 환하고 까맣게 어둠을 가르는 경계선

붉게 환하지도 않고 까맣게 어둠지도 않은
그렇게 어디에도 닿지 않은 채 환하게 드러나는

저 그리움

Posted by 곡인무영
,

반응

카테고리 없음 2023. 1. 8. 06:59

반응

반응이었다.

저건 非風非幡이었고,
이건 非風非浪이었다.
그건 그때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반응한 건
동작하는 상태가 동작한 것이었다.
‘멈춘 채’로 ‘움직인 것’의 상태였다.

#

손등도 손이고,
손바닥도 손이다.

손등을 보여줘야 할 때 손을 내밀고
손바닥을 보여줘야 할 때도 손을 내민다

손등이 표면일 때 손바닥이 이면이고
손바닥이 표면일 땐 손등이 이면이다

내 반응의 의미는 두께없는 표면에 있는데
네 해석은 두께없는 이면을 뒤집었다 엎었다한다.

네 팔 네 흔들고
내 팔 내 흔들지만

내 팔 내 흔드는 까닭은
네 팔 내 흔들기 위함이다.

#

바람만이 아니었다

바람이 멎었다
그런데도
파도는 끊임 없다

이제야 조금 알겠다
파도를 일게 한 것이
바람만이 아니었다

Posted by 곡인무영
,

결심

카테고리 없음 2023. 1. 2. 08:38

<결

아침을 거둬 낮을 뀄고
저녁에 고였다 밤에 흩어져서
다시 새벽을 흘러 아침에 멈췄다

마주한 물은 밤새 고요하고
돌아본 길은 차갑게 말랐다

만행하던 물이 멈추는 예양강 박림소는
마치 한소식 기다리며 안거하는 선방 같다.

#

물의 결가부좌 / 이문재

거기 연못 있느냐
천 개의 달이 빠져도 꿈쩍 않는, 천 개의 달이 빠져 나와도 끄떡 않는 고요하고 깊고 오랜 고임이 거기 아직 있느냐

중략

고개 들어 보라
이런 날 새벽이면 하늘에 해와 달이 함께 떠 있거늘, 서쪽에는 핏기 없는 보름달이 지고, 동쪽에는 시뻘건 해가 떠오르거늘, 이렇게 하루가 오고, 한 달이 가고, 한 해가 오고, 모든 한 살이들이 오고가는 것이거늘, 거기, 물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다시 결가부좌 트는 것이 보이느냐

#

예.

"새해에는 해야만 하는 일보다, 할 수 있는 일보다 좋아서 저절로 이뤄지는 일이 두어 개 더 많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심>

Posted by 곡인무영
,

선물

카테고리 없음 2022. 12. 31. 21:45

선물

오늘 아침에 수거한 아이스팩을 깨끗이 씻고 헹궈서 시장 상인들에게 전해드렸다. 이어지는 일정은 아침 공양이다. 1년 365일 년중무휴인 콩나루국밥집으로 가서 뜨끈한 국밥으로 찬 속을 데웠다. 나는 늘 먹던데로 콩나물만 넣은 돌솥밥으로 공양을 했다.

밥을 먹으면서 장평 사는 승군 형이 책 살 거 있으면 사줄테니 말하란다. 책값으로만 쓸 수 있는 비용으로 지원 받은 20만 원이 있는데 여태 못 쓰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까지가 기한이어서 오늘 쓰지 않으면 사라진다는 것이다. 승군 형은 교보문고나 알라딘 같은 대형서점에서만 책을 살 수 있다고 하면서 온라인으로 주문을 하자는 것이다. 밥 먹고 커피 마시러 가서 차분히 주문을 하기로 했다.

커피 마시는 동안 만교형이 폰을 톡톡 두드리면서 로그인을 하고 책을 고를 때 내가 막 덤벼들었다. 폰에 저장해 놓은 책 목록을 꺼내서 들이밀었다. 예닐곱 권은 됐다. 결제를 하려는데 잘 안 되는지 버벅거린다. 그 와중에 박형대 의원이 뭘 찾아봤는지 지역 서점에서도 살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한다. 승군 형은 아니라고 한다. 혹시 모르니까 알아는보자고 해서 1944년에 개업해서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는 마을서점 문화당에 전화를 했다. 카드로 책을 살 수 있다는 답을 듣고 문화당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아직 열지 않은 문 앞에서서 쥔장한테 문 열어달고 전화를 해서 안으로 들어갔다. 쥔장 부부가 휘둥그래 하거나말거나 일단 지원금이 처리가 되는지 책 한 권을 사들고 승군 형 카드로 결제를 해봤다. 됐다. 나이스. 박형대 의원은 하얼빈 한 권을 골랐다. 만교형은 서너 권을 골랐고 나는 왕창 골랐다. 고르고 보니 여섯 권이다. 정길은 아예 멀뚱하고 승군 형도 책 한 권도 고르지 않으면서 오히려 지원금 한도를 넘은 건 자기 돈으로 사주겠다고 한다. 그럴수야 있나. 더 나온 만칠천 원은 내가 결제했다. 오졌다. 이승군 형 책 선물 고마워요.

덕제 평장마을 빛깔 선생님 댁으로 향했다. 마을 입구에서 전화를 했더니 집으로 들어오라신다. 김영숙 권사님이 내려주는 커피 한잔 하는 동안 바삭하게 구워준 그랑께롱 빵 세 조각 먹었다. 마동욱 선생님께 이따 여럿이 모여 저녁 공양 같이 하자고 했더니 마다신다. 서운함이 아직 풀릴 때가 아닌 듯해서 더는 말씀을 드릴 수 없었다. 때가 있겠지.

빛깔 선생님 댁에서 나와서 송산마을 또랑새비네로 향했다. 찐한 에스프레소 한잔 마시고 싶었다. 오래된숲 입구에 안거를 세우고 루치아노한테 전화를 했는데 안 받는다. 주무시나? 안거에 안거 잠깐 해찰하는데 빗자루로 골목으로 흩어진 잔돌을 쓸어 올리는 이가 옆거울에 보인다. 가만보니 오래된숲 쥔장 윤영소 선생님 같았다. 나가서 보니 맞다. 홍천에서 어제 오셨단다. 조금 어색했지만 불쑥 포옹을 했다. 서재에서 몇 마디 나누다가 점심 공양 같이 할 건지 물으신다. 좋지요. 내 선택지는 뻔했다. 도깨비방망이 보리밥이거나 황손두꺼비 보살님이 알아서 끓여주는 된장국, 아니면 화풍이다. 화풍 능이버섯덮밥은 언제 먹어도 좋다. 주문한 메뉴가 나오기 전에 윤영소 선생님은 특유의 입담이 터지셨다. 인도의 경전을 중국어로 번역했다는 구마라집을 떠올리게 하는 구라가 좋아서 이야기에 빠져들었다. 수학을 공부하고 싶다는 말씀에 분수를 배울 때 기억이 떠올랐다. 요즘 부쩍 과학에 관심을 두고 있다. 분수를 알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분수를 배워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가방에서 작은 손가방을 꺼낸다. 거기서 연필을 꺼내시는데 골무처럼 연필심을 보호하는 덮개가 씌워져 있었다. 겁나 멋지다고 했더니 쓰던 연필 한자루 주신다. 냉큼 선물로 받았다. 고맙습니다. 윤영소 선생님.

역시 밥을 먹었으니 차를 마셔야지. 화풍에서 물숲까지 걸었다. 윤영소 선생님과 장흥 읍내 골목을 걸은 게 처음이다. 최연택 선생님 나이를 듣고는 깜짝 놀란다. 동년배쯤으로 알았다신다. 물숲 문앞에 앉어있던 지산이 반긴다. 지산과 두꺼운 포옹을 했다. 지산한테 1년 동안 마신 물숲 커피를 다 합친만큼 행복한 커피를 내려달라고 주문했다. 여느 때하고 달리 찐하게 내려준 커피를 작은 잔에 담아 내준다. 지산은 아까 내가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싶었다는 걸 알았을까? 이제부턴 이 커피를 마실거라고 했다. 고마워 지산.

엊그제 준희 군 고전기타 연주회 때 잠깐 인사 나눈 김은주 상담복지센터장이 준 다이어리가 떠올랐다. 국민학교 1학년 때 생활통지표에 글씨를 못 쓴다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글씨가 엉망이다. 글씨만 봐도 그사람 성격을 알 수 있다는데… 차분히 한자 한자 글씨를 쓰면 될텐데 그렇지 못해서 괴발개발이다.

한 해를 마무리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했다. 참 많이 복잡하고 미안하고 고마운 한 해였다. 서툴지만 마음을 담은 손글씨를 써서 미안하고 고마운 이들에게 인사를 하고 싶었다. 다이어리를 펼쳤다. 어디다 글을 쓸까 뒤적이다 펼쳤는데, 2023년 12월 31일과 2024년 1월 1일의 두 면이 한 면으로 들어온다. 세로 둘이 가로 하나가 되는 면이다. 좋다. 그래 여기가 딱이다.

#



오늘 하루가 일년이다.
오늘 하루 잘 살았다.
오늘, 일년을 잘 살았다.

맨날만날 온 날, 오늘
고맙습니다.

//



오늘 하루가 일년이다.
오늘 하루 잘 살아보자.
오늘, 일년을 잘 살 수 있는 날이다.

送舊迎新

Posted by 곡인무영
,

두께

카테고리 없음 2022. 12. 30. 14:09



두께

 

꿈을 꾸느라 몇 번이고 잠을 뒤척였다. 긴가민가 꿈인지 생시인지 경계를 확정짓지 못한 채 잠을 깼다. 결국 꿈이었다. '슈레딩거의 고양이’, '앞이면서 동시에 뒤인 동전’, '살이 있으면서 동시에 죽어 있는 고양이’,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인 것’, ‘하나인데 둘인 것, ‘여러 상태가 동시에 존재하는 중첩’, ‘보기 전과 본 뒤’가 그렇다. '미시의 세계와 거시의 세계' '미시와 거시를 가르는 경계는 어디인가’, '미시의 두께는 얼만큼이고 거시의 두께는 어느정도인가’ ‘운동과 위치’를 동시에 보는 관계의 반비례성에서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 ‘하이젠베르크가 주창했다는 불확적성 원리’라는 것은 또 뭔지…

깨고 보니 내가 평소 쓰던 "두께없이 투명한 양면의 경계"에서 비롯했을 것 같은 꿈이었다.

어제 새로운 수행결사라는 ‘불이선회’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자칭 사신출가수행자로 살고 있는 내 입삶을 반성하고 성찰하게 하는 마중물이었다. 行行本處(행행본처)이고 至至發處(지지발처)라는 것처럼 ‘운동과 위치’가 동시에 생멸하는 와중이 세상이다.

마을도량에서 混俗心法으로 繼開修行을 하겠다면 ‘안 선지식’을 구하는 일을 우선으로 두어야지 않겠나. #

요 위까지가 그제 아침에 쓰다 만 글이다. 다시 꺼내서 읽어보다가 마무리를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웨이가 흐르는 물숲에 안거 커피를 기다리면서 토독톡톡 자판을 두드린다. 생각이 두드리는 것인지 생각을 두드리는 것인지. 두드릴 때 손가락 끝에 닿는 생각이 글로 나타나는 걸 보면서 두드린다. 종이에 연필이나 볼펜으로 글을 쓰는 것보다 이렇게 자판을 두드리면 글 쓰는 게 수월하다. 같은 손을 쓰는 것인데 생각의 속도를 따라가는 건 아무래도 자판을 두드리는 게 낫다. 지웠다 다시 쓰는 것도 편하고.

#

혼속심법이니 계개수행이니 하는따위의 이름을 짓는 까닭은 내 지향이 있기 때문이다. 곤수곡인 스승의 흔적을 보면서 스승의 지향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많은 흔적들 가운데 내가 천착하는 단어(의 의미)가 몇 있다. 同爐共冶. 佛學과 學佛. 般若五悳. 反白. 反白八道. 精神維新과 心理建設. 火候와 懺悔. 悳과 德 그리고 道德. 곤수곡인 스승은 ‘道’를 ‘悳’과 같은 뜻으로 쓴다. ‘곧 선 마음[直心]’인 ‘悳’. 이 '곧 선 마음’을 두루고루 펼쳐 움직이는 것이 德이다. 이 곧 선 마음은 심방변[ ‘忄’]과 같은 뜻으로 여기고 있다. 그러다보니 ‘忄’을 부수로 쓰는 한자에 특히 더 관심을 두고 살피곤 한다. 곤수곡인 스승의 가르침을 내 나름과 깜냥으로 해석한 바로, 누운 마음[心]을 일으켜 세우는 것이 회복인데, 이 회복은 본디로 돌아감이다. 곤수곡인 스승의 흔적에서 이 본디로 돌아감은 反白이다. 그래서 곤수곡인 스승은 이 돌아감[歸]을 反白의 皈로 쓰는 것이다. 내 지향과 바탕은 이와 같음으로 비롯한다. 생각의 두께를 생각한다. 생각에 두께가 있을까? 생각의 두께는 흔적의 두께이기도 하겠다. 바탕에서 비롯한 지향은 나선으로 쌓이면서 바탕으로 돌아간다. 원심력의 지향은 구심력의 바탕으로 수렴되고 다시 펼쳐지는 나선의 지향은 두께없이 투명한 양면 같은 생각으로 켜켜이 쌓이면서 흔적이 중첩된 ‘나’로 나타난다. 나는 나를 이렇게 여긴다.

다시, ‘불이선회’의 결사를 떠올린다. 아제아제

Posted by 곡인무영
,

닿자

닿을 때 소리가 나는 것처럼
닿을 때 생기는 생기가 있다
닿아 낳은 소리 중 빗소리가 좋다

놓으니 닿는구나 비는

놓아야 할 것이 있고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있다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지 물어보는 빗소리다

닿고 싶은 데가 있나?
놓아야 할 것은 뭘까?

닿을 때 나는 빗소리를 보고
낳는 일을 생각한다. 생각이 생각을 낳는다.
낳은 생각을 닳을 때까지 審問하고 愼思할 일이다.

놓자
.


Posted by 곡인무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