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지

카테고리 없음 2024. 6. 26. 09:03

종지

 

밖에 있는 것을 끌어들여

안을 채웠던 것이었구나

 

고작 종지 하나 쥔 것이었는데

마치 여의주라도 쥔양 자만했구나

 

겨우 종지에 담아 마중물인양 들여

작두샘 퍼 올리는 것이라고 애썼던 것이었구나

 

차면 넘칠 수밖에 없는 빈 서러움을 채우지 못해

밑이 닫힌 빈 항아리를 우물인양 으시댔던 것이었구나

 

밑을 뚫고 관정을 깊숙히 내려 둔 채

운주사 쌍배불처럼, 두께없이 투명한 양면 같은,

마중물 기다리는 텅 빈 작두샘이자고 했는데

 

심심 켜켜 흐르는 새 물 긷는 것이라 자만했던 것이었구나

 

층층에 쌓여 굳고 칸칸에 싸여 닫힌,

진흙으로 엉긴 마중물 덩어리였던 것이었구나

손가락 한마디 더 파지 않아서

 

쥔 종지로 밖을 퍼 담아 항아리 안을 채울 게 아니라

 

쥔 종지로 안을 한 층 더 파 냈어야 했던 것이었구나

쥔 종지로 안을 한 켜 더 퍼 냈어야 했던 것이었구나

 

전전긍긍 밑 빠진 독 될까

종지를 잘못 쓴 흔적이 두껍다

 

쥔 종지 작두샘처럼

 

 

Posted by 곡인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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