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가는데
갈림길 나타나면 멈칫.
누구나 그렇지는 않지.
저기
가는 길에 나타난 여기
어느 길로 가든 저기에 닿지
저기가 어딘지 왜 가는지 알고 있다면
까치발 해서라도
너머가 보이면 담
그렇지 않으면 벽
그래서
돌담 넘에가지 않고
돌벽 따라 난 길 돌아 걷는다.
모든 길은
너머에 가 닿(으려)는 길이다.
아제아제



길 가는데
갈림길 나타나면 멈칫.
누구나 그렇지는 않지.
저기
가는 길에 나타난 여기
어느 길로 가든 저기에 닿지
저기가 어딘지 왜 가는지 알고 있다면
까치발 해서라도
너머가 보이면 담
그렇지 않으면 벽
그래서
돌담 넘에가지 않고
돌벽 따라 난 길 돌아 걷는다.
모든 길은
너머에 가 닿(으려)는 길이다.
아제아제
틈 없고
자리 없는 것 있을까마는
송곳 꽂을
자리가 없다는 것은
차라리 다행이었을까
송곳이라도 있었으니
#
거미가 없어서 거미집이 녹슨 것인지
거미집이 녹슬어서 거미가 떠난 건지
몸이 까맣게 타버린 거미처럼
까맣게 녹슨 철조망도 설움에 늙은 것일까
김수영이 바라는 것과
윤동주의 사는 까닭은
ㆍㆍㆍㆍㆍㆍ
觀燈(관등)
봄녘, 남끝으로 가면 남포가 있다.
남포에 가서 바다를 향해 앞을 보면
작은 등잔처럼 생긴 섬 하나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소등섬이다.
돌바위 소등섬에는 소나무 몇 그루 있는데
상투처럼 솟은 모양이 꼭 등잔의 심지 같다.
소등섬 소나무심지에 '촛불' 같은 '햇불'이 켜져서 아침이다.
이 섬에는 남쪽 바다를 향해 기도하는 할매 한 분이 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부나 한결 같은 자세로 기도하는,
소등할매
#
남향(南向) / 이문재
그때는 그 사람이 남쪽이었습니다
그때는 그 한 문장이 정남향이었습니다
덕분에 한 시절 잘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봄이 이듬해 봄 만나기를 서른몇차례
많은 시대가 한꺼번에 왔다가 사라졌습니다
오래된 미래는 더 오래가 되었고
온다던 미래는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습니다
꽃 진 자리에서 하늘을 보며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남쪽일 수 있을까요
우리들은 어느 생에게 정남진일 수 있을까요
그때는 여기 저기 남쪽이 많았습니다
더불어 함께 남쪽을 바라보던
착하되 강하고 예민하되 늠름한 벗들이
도처에서 서로 부등켜안고 그랬습니다
남쪽은 저기 여전히 맑고 푸르러 드높은데
이 겨울이 봄 여름 가을을 건너뛰어
다음의 긴 겨울을 만나고 있습니다
처음 같은 마지막처럼
<혼자의 넓이, 창비>
#
무심하면 지나칠테지만 자세히 보면 이 소등할매 형상이 독특하다.
손바닥을 맞대는 합장이 아니라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쥔 모양이고,
무릎은 꿇고 엉덩이는 들어올려 長跪(장궤)를 한 채 기도하는 모습이다.
사실 소등할매의 이런 기도자세와 손모양이 나에게는 익숙하다.
어릴 때부터 인덕법단(일관도, 국제도덕협회)에서 익힌 모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이 소등할매 모습이 낯설고 궁금하다.
이 할매 형상을 만드신 분은 누군지, 어느 할매를 본으로 했는지.
아, 그리고 小燈섬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굳이 素燈섬이라고 부른다.
소등섬에서 심지처럼 장궤를 한 채
남쪽을 바라보며 觀燈 기도하는 소등할매는
누구든지 옆에 오라고
자리를 내어주고 뒷자리도 내어준다.
觀燈하듯 정남을 바라보자고.
觀燈하듯 앞을 오래오래 보자고.
기도하자고
素燈할매가 온 마음을 보여준다.
#
소등할매를 곁에 두고싶어서 민에게 부탁했다.
https://www.instagram.com/p/CdAk62WLrw4/
향꽂이 목각 소등할매가 왔다.
향을 감싸쥔 소등할매를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
觀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