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카테고리 없음 2020. 11. 20. 21:45

흔적 
 
그리고, 그래서 마중물 
 
이러했다. 고 대답한 흔적이 생겼다. 
 
물음에 대답한 설명에 부족한 부분이 있고, 아쉬운 부분이 있다. 표현에 거침이 있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의 맥락은 솔직했기에 내 흔적으로 감수한다. 
 
인터뷰 이후로 난 기사를 가만히 혼자 봤는데, 오늘 오후에 지인이 기사 링크를 보내줘서 핑계김에 공유한다. 
 
이와 같다. 
 
내 삶의
모든 흔적은 허물이었다.
허물로써 허물을 지우고,
허물로써 허물을 덮는다. 
 
"모든 결과는 비로소 과정이었다." 
 
// 
 
최근 논란의 핵심으로 떠오른 혜민스님이 가장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은 ‘건물주’나 ‘풀소유’여서가 아니다. 무소유의 가치를 전파하면서 자신은 가장 눈부신 현대사회 혜택을 온몸으로 받아낸 과거와 다른 ‘언행’ 때문이다. 
 
대표적인 모순이 조계종에서 승적을 받고 절 생활을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본인 명의의 단독주택에서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는 장면이 최근 브라운관을 통해 고스란히 전파된 것이다. 
 
“무소유의 가르침에 대한 무게감이 떨어졌다”, “차라리 무소유 코스프레를 들키지나 말지” 같은 비판이 적지 않게 이어졌다. 
 
혜민스님이 결정타를 맞은 것은 미국인 현각스님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으면서다. ‘기생충’ ‘도둑놈’ 같은 단어를 동원해 비난의 수위를 높이자, 혜민스님은 결국 활동을 중단하겠다고 16일 선언했다. 혜민스님은 “며칠 사이의 일들에 마음이 무겁다. 승려의 본분사를 다하지 못한 저의 잘못이 크다"고 사과했다. 
 
특이한 건 혜민스님의 사과 이후 현각스님은 바로 “아우님, 혜민과 70분 동안 마음을 나누며 통화했다”며 “그의 순수한 마음을 존중한다”고 화해를 내비쳤다. 그리고 사건은 무마되는 듯했다. 
 
하지만 진짜 무소유를 실천하는 스님들은 이 사건의 이면이 지닌 깊은 진실과 상처에 대해 우려를 드러낸다. 아직 끝나지 않은 숙제라는 얘기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출가한 곡인무영 스님은 ‘문화탁발’을 통해 사람과 교류한다. 불가에 귀의한 뒤 붓다가 실천한 삶의 흔적을 그대로 따라가는 ‘흔적이 지향’이라는 태도를 지키며 살아간다. 
 
혜민스님은 베스트셀러로 거액의 인세를 벌어들였지만, 곡인무영 스님은 ‘노동탁발’로 하루 ‘찡’하게 벌어 한 달을 연명한다. 
 
16일 전화인터뷰에서 ‘노동탁발’이 무엇이냐고 묻자, 그는 “전방 21사단 65, 66연대 철책을 오르락내리락 다니면서 등짐 지는 일을 한다”고 했다. 한마디로 ‘막일’로 탁발을 대신하는 셈이다. 
 
‘탁발에 왜 노동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곡인무영 스님은 이렇게 말했다. “자기 탁발 내미는 일을 소위 ‘삥 뜯는다’고 저는 표현해요. 제가 선택한 수행 노정에는 ‘노동’이 따라 붙었어요. 고급스럽게 포장한 단어가 ‘노동탁발’이죠. 종교의 관점에서 탁발은 미화돼 있거나 고급화돼 있죠. 일반인에게 탁발이 심지어 ‘위계적’으로 비칠 수도 있거든요. 생존의 문제는 누구에게나 똑같아요. 종교의 노동행위도 결코 다르지 않아요. 일과 수행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지만, 일도 수행의 연장으로 해석할 수 있어요.” 
 
혜민스님 사건에 대해 그는 “어떤 분이 ‘힐링 양아치’라는 표현을 썼는데, 일부 동의한다”고 했다. 
 
사람들을 힐링이라는 범주 안에 넣어서 그들을 주체로 만드는 게 아니라 잠깐 위로받게 하고 그들 에너지를 자기 유지의 원천으로 삼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워킹맘들에게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이 없으면 새벽 6시부터 45분 정도 같이 놀아주라는 주장도 했는데, 경험하지 않은 수행에 대해 해법을 제시하는 것도 ‘힐링 양아치’의 표본이에요. 사람마다 결이 다른데, 마치 해결사인 양 행동한 거잖아요. 그런 사례를 통해 다시 ‘나’를 돌아다보긴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곡인무영 스님은 혜민스님의 ‘건물주’ ‘풀소유’ 등과 관련해서는 “그것이 본질은 아니다”고 했다. 조계종에 승적했다고 꼭 절에 살아야 하는 건 아니다. 주지 스님이 공찰의 의무를 주지 않는 한 토굴이 아파트든 단독주택이든 상관없다는 얘기다. 토굴은 신도가 드나들지 않는 혼자 공부(수행)하는 공간을 일컫는다. 
 
“그것은 그가 가진 능력에 대한 자기 방식이기에 그것 자체를 판단하지 않아요. 문제는 ‘자의적 해석’이죠. 종교의 옷을 입은 사람이 그 옷으로 보이는 ‘표면’과 ‘이면’의 실체가 얼마나 같을 수 있는지 자기 식대로 해석할 수 없다는 얘기예요. 양두구육(羊頭狗肉·양 머리를 걸어놓고 개고기를 판다)처럼 매불자생(賣佛資生·부처를 팔아 자기 삶을 산다)이 승려의 삶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곡인무영 스님은 혜민스님이 사과와 뉘우침으로 이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무엇보다 자문자답으로 ‘솔직한 수행’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자기 이면을 꺼내서 표면에 덧대 일치화를 시키는 작업이 중요한데, 이 해결책이 윤색이 아닌 각색으로 ‘포장의 포장’이 되지 않을까 우려했다. 
 
“혜민스님 사건의 본질은 그가 건물주냐 아니냐의 진실공방이 아니라 그 이면에서 방하착(放下着·어떤 것도 유지하지 않고 내려놓는 것)을 할 수 있느냐 없느냐예요. 교수까지 하신, 불교의 상징적 아이콘이기에 더욱 그렇습니다.”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https://m.mt.co.kr/renew/view.html?no=2020111622594517728&ca=

 

 

 

 

Posted by 곡인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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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테고리 없음 2020. 3. 21. 22:40



눈을 잃어버린 과거부터
귀를 잃어버린 현재까지
입은 미래에서 침묵하지

않는 것일까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이기



길에 나아갑니다.

Posted by 곡인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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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판수행

카테고리 없음 2020. 3. 11. 05:12

마중물 - 삼판[參辦]수행

어제, 산판 일을 하면서 삼판수행을 생각했다.
(2016. 03. 11.)

삼판[參辦/참판]수행은 이판(理判)수행과 사판(事判)수행의 와중에서 이판사판을 아우르는 수행이다.
삼판(수행)은 이판(수행)도 아니고 사판(수행)도 아니다.
삼판(수행)은 이판(수행)이면서 사판(수행)이다.
삼판(수행)은 "일정한 논리나 기준에 따라 사물의 가치와 관계를 결정한"다는 뜻의 판단(判斷)하는 수행이 아니다.
삼판(수행)은 경계의 접점이고, 이 접점의 경계를 넓히는 수행이다.
삼판(수행)은 이판과 사판의 와중에서 이판과 사판을 꿰고 매는 수행이다.
삼판(수행)은 생각의 힘을 쓰는 일이고 손과 발을 맞춰서 함께 쓰는 수행이다.
삼판(수행)은 한 면은 대웅전을 향하고 다른 면은 일주문을 향하고 있는, 천불천탑 운주사에 있는 '석조불감쌍배불'과 같은 것이다.
삼판(수행)을 운주사 쌍배불과 같은 것이라고 하는 이유는, ''두께 없이 투명한 양면'처럼 한 데 있으면서 심우도를 통해서 말하고자하는 것과 같은데, 이는 수행의 시작과 결과인 '심우'와 '입전수수'를 한 자리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삼판(수행)은 동심원의 움직임처럼 끝없이 넓어지는 과정을 흔적으로 드러내는 나선형의 지향이다.
삼판(수행)은 그래서 '모든 결과는 비로소 과정이었다.'인 것이다.
삼(판수행)은 고타마 시타르타 붓다가 깨달은 법과 역대 선지식들이 가르친 법을 계개(繼開)하여 쓰는 혼속조사의 법과 그 가르침을 따라서 공부하는 것을 이른 말이라고 내가 정했다.
삼판(수행)은 내 것 잘 쓰는 일이고, 마을도량에 나투신 천백억화신 미륵고불과 어울리며 공부하는 마실수행이다.

어제, 산판 일을 하면서 삼판(수행)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더니,
이 일을 같이 하자고 소개해준 장흥 농민회 김동현 선생님이 한 소식 일러주신다.

"힘들재라?""
"예~ 조금요,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지 팔뚝 근육이 뭉치기는 하네요."
"......"
"......"
"그나저나 애를 봐주려면 언제까지 봐줘야 하는 줄 안가요?"
"......"
"애 엄마 올 때까지 봐줘야 하는 겁니다."
"뭔 뜻이 있는 말씀 같은데 무슨 뜻이예요?"
"이 일 끝날 때까지 계속 와서 일해야한다고요."
"일로 뭉친 근육은 일로 풀어야 한다는 건가요?"
"일 다할 때까지 와서 일 하시라고요."
"아~ 예. 그래야재라~ 그럴랍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인디언 기우제가 떠올랐고,
'공부하다 죽으라'는 선지식의 지향도 떠올랐다.
때마다 떠올리는 '모든 결과는 비로소 과정이었다.'는 여전히 당연하였다.

산은 가파르고 비탈은 험한데 베어 놓은 나무는 아직도 사방에 널려있다.
늪처럼 발이 빠지고 흔들거리는 너덜겅에서 뾰족한 돌 끝을 겨우겨우 밟고 피하고나면 넝쿨이 발목을 잡이 걸음을 더디게 하고, 그렇게나마 조금씩 움직일라치면 곳곳에 있는 시누대들이 디딤발을 미끄럽게 해서 중심을 무너뜨린다.

어제, 산판 일을 한 그 산의 바닥, 판이 그렇다.
오늘, 산판 일을 할 이 산의 바닥, 판도 이렇다.

온날 문화탁발행선의 만인불사는 산판 일을 마중물로 들여 삼판수행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공부하는 마실수행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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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이, 삼, 사, 오
일[事]과 오[悟], 그 사이에서 하는 일~


Posted by 곡인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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