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양주

카테고리 없음 2022. 1. 31. 17:14

공양주

처음 만든 음식은 라면이었다. 그리고 김치찌개. 냄비밥도 지어봤고, 달걀후라이도 만들어서 상을 차렸다. 홍은동 쌍둥이네 셋방 살 때다. 그때는 연탄불로 했다.

79년에 서대문중학교 입학하고 몇 달 뒤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다음해 경기상고에 입학한 형 학교 다니기 좋도록 통인동으로 이사했다. 집주인은 양복점을 했는데 길가 전방처럼 양복점이 있었고, 양복점 문과 나란히 셋방 출입문이 있었다. 문 열면 바로 부엌이고 왼쪽으로 방으로 들어가는 미닫이 문이 있는 부엌이 딸린 단칸방이었다. 변소는 밖에 따로 있었다. 세운상가 맞은편에 있던 공작고전의상실에서 한복 바느질을 하셨던 황모님은 이틀이 멀다고 밤새워 일을 하시기 일쑤여서 부엌 살림은 대개 내가 했다. 가지볶음 반찬은 통인동 살 때 처음으로 했다. 그땐 석유곤로에 후라이판 올려놓고 했었다. 그래서인지 기억이 생생하다. 그리고 오뎅볶음 반찬이 하나 더 늘었다.

두 해 그렇게 살다 흑석동 인덕법단에서 사신출가 생활을 했으니 부엌 살림하곤 거리가 멀었다. 시내버스 노동자로 지낼 때 자취를 했지만 국 끓여 먹는 정도였지 따로 반찬을 만들어 먹거나 요리를 해먹지는 않았다. 무생채를 버무려서 두고 먹는 게 다였다. 그래서 지금도 무생채는 곧잘한다. 쨌든 식욕은 왕성했어도 뭘 먹고싶은 게 있다거나 하지 않아서 성가신 건 없었다. 그저 허기만 가시면 그만이었다.

조금전에 불쑥 뭔 요리?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김말이튀김을 만들어 보려고 상상을 하면서 마트에 가서 재료를 준비했다. 라이스페이퍼에 김을 올려놓고 그 위에 잡채를 얹어서 돌돌 만 다음에 후라이팬이 볶듯이 튀겨볼 요량이었다.

잡채는 대충 만들었다. 적은 것 같아서 조금 더 했는데 막상 만들면서 보니 처음에 준비한 것도 많았다. 맛을 봤더니 간은 좋았다. 깻잎을 넣어서 향도 괜찮고. 이제 잘 말면 될 일이다.

역시 어설펐다. 처음엔 꽝. 다시 또 꽝. 엉성하다. 자꾸 엉성하다. 사각으로 된 라이스페이퍼인데 처음에 반듯이 놓고 했더니 옆으로 삐져나오는 잡채가 수습이 안 됐다. 다섯 번의 엉성함 끝에 모로 놓고 했더니 딱이다! 그때부터 모양이 제법 나왔다. 준비한 김은 4장이었다. 4등 분을 하면 16개를 만들 수 있을 줄 알았는데 다 만들고 보니 15개다. 한 개가 어디로 사라졌지? 잡채가 많이 남아서 하나는 김 없이 바로 말아봤다. 얼추 괜찮게 보인다. 영 똥손은 아닌 것 같다.

말아 놓은 말이를 조금 마르게 뒀다가 후라이판에 기름을 두껍게 두르고 튀기듯 부치듯 집개로 뒤집어가면서 고르게 튀겨지도록 했다.

남은 잡채도 후라이판에 넣고 볶았다. 뜨거울 때 바로 먹으니 맛이 겁나 좋다.

처음 한 김말이튀김이다. 공양주 흉내라도 낼 수 있으면 좋겠다. 누구랑 먹을까?

Posted by 곡인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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