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

카테고리 없음 2015. 9. 18. 10:10

만남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을 만났다.
수행순례자의 집[Guest Temple], 만인불사 설계를 부탁하려고 마음에 품고 있는 분이다.

어려서부터 '집'에 관심이 많았다.
서울북공고 토목과를 다녔는데 토목과 건축이 다르다는 걸 그때 알았다.
치산치수[治山治水]로 사람이 사는 터를 다지는 토목과 그 터에서 사람이 사는 공간인 집을 만드는 건축.
문화불사를 서원하고 마을도량에서 문화탁발행선을 하는 것도 이 토목, 건축과 다르지 않다고 여기고 있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으면서 사람이 살 수 있는 터를 다지는 일, 그 터에 집을 짓고 사는 일.

유형의 토목과 건축
무형의 관습과 습관

관습의 바탕에서 태어난 습관은 관습의 틀이 되고, 이 습관의 틀은 다시 관습의 바탕이 된다.
문화불사는 딛고 있는 바탕과 두르고 있는 틀을 살피는 일이다.

거칠게 한마디로 하자면 '생각[念]'을 하는 일이고, '생각[念]'을 쓰는 일이다.
고타마 붓다의 법을 잇는 혼속조사의 가르침 중 내가 수행의 지향으로 삼고 있는 것이 있다.
'생각'으로 '생각하는 생각'을 살펴서 '생각을 없애는 일'로 '생각을 쓰는 일'[念念告天]이다.

[念念告天]은 바탕과 틀을 보는 생각이고 바탕과 틀을 깨는 일이다.

그제 저녁,
쿤스트라운지에서 태중에 다섯달 된 오복이를 품고 있는 여왕벌을 만났다
여왕벌은 전남일보 기자인데 처음 인연한 계기가 다문화관련한 기사 때문이었다. 그 뒤로 한결 같이 인연하고 있다. 이 여왕벌이 어느새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품고 있다. 참 아름다운 여자사람이다. 그제도 여느 때처럼 만나서 일상의 경험을 이야기하면서 공부를 하다가 오랜만에 만난 쿤스트라운지 쥔장과 육아에 대한 이야기로 흐른다. 한국사회의 선명한 단면이다.
육아에 대해선 문외한인 나는 가만히 듣고 있다. 쿤스트라운지 쥔장 정유진 선생님은 다문화가정이다. 육아를 위해 아이를 대하는 부부의 규칙을 정했다는 말을 반갑게 배웠다. 아이에 대한 믿음과 육아에 대한 확신이 있다. 아이가 자기 삶의 주체로서 행복한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모가 할 일을 분명하게 정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데 아죽 낯익은 얼굴이 쿤스트라운지에 들어온다.
건축가 승효상 선생님이다.
일어나서 인사를 할까하다가 말았다.

셋이 한참을 더 이야기를 나누는데 승효상 선생님이 자리를 옮기느라 움직일 때 정유진 선생님이 알아보고 인사를 나눈다. 때를 놓치지 않고 나도 인사를 건냈다.

"꼭 한 번 찾아가서 만나보고 싶었"고
"만나면 부탁할 게 있다"고 하면서
"이따 명함을 받아가고 싶다"고
"사진도 찍자"고 하였다.
흔쾌히 그러자신다.

여왕벌과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나서면서
승효상 선생님과 사진을 찍고 명함을 받았다.
만인불사 설계를 해달라고 부탁하러 갈 일을 생각하니 설렌다.

밖으로 나와 헤어지는 인사를 할때, 여왕벌이 조심스럽게 접힌 봉투를 내민다.

영화 '선생 김봉두'를 보면서 마음이 담긴 촌지와 이끗을 노리는 뇌물의 차이를 구분했다.
보란듯이 테이블 위에 올려 놓는 빳빳한 하얀봉투와 슬그머니 주머니에 찔러 넣어주는 꼬깃꾸깃한 주름 속에 숨긴 마음이 그것이다.
받는 사람을 궁색하게 하면서 주는 것과
주는 마음이 아름다워 감사히 받는 것은
꼬깃꾸깃 접힌 주름이 있고 없고의 차이였다.

쿤스트라운지는 아시아문화전당 옆 소통의 오두막이 있는 곳에 있다.
소통의 오두막은 광주를 두르고 있는 10개의 어번폴리 중 하나이다. 승효상 선생님과 관련이 있는 곳이다.

소통의 오두막 옆 쿤스트라운지에서 승효상 선생님을 만난 게 우연이 아닌 것 같다.

만인불사는
만 人佛이 하는 일[事]이고
만 人佛이 머무는 집[舍]이다.
그래서 수행순례자의 집[Guest Temple]이라고 하는 것이다.
'만인불사'는 켜켜의 주름처럼 여러 뜻을 담아 겹치게 지은 이름이다.

온날 문화탁발행선의 만인불사는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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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곡인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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