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판수행

카테고리 없음 2020. 3. 11. 05:12

마중물 - 삼판[參辦]수행

어제, 산판 일을 하면서 삼판수행을 생각했다.
(2016. 03. 11.)

삼판[參辦/참판]수행은 이판(理判)수행과 사판(事判)수행의 와중에서 이판사판을 아우르는 수행이다.
삼판(수행)은 이판(수행)도 아니고 사판(수행)도 아니다.
삼판(수행)은 이판(수행)이면서 사판(수행)이다.
삼판(수행)은 "일정한 논리나 기준에 따라 사물의 가치와 관계를 결정한"다는 뜻의 판단(判斷)하는 수행이 아니다.
삼판(수행)은 경계의 접점이고, 이 접점의 경계를 넓히는 수행이다.
삼판(수행)은 이판과 사판의 와중에서 이판과 사판을 꿰고 매는 수행이다.
삼판(수행)은 생각의 힘을 쓰는 일이고 손과 발을 맞춰서 함께 쓰는 수행이다.
삼판(수행)은 한 면은 대웅전을 향하고 다른 면은 일주문을 향하고 있는, 천불천탑 운주사에 있는 '석조불감쌍배불'과 같은 것이다.
삼판(수행)을 운주사 쌍배불과 같은 것이라고 하는 이유는, ''두께 없이 투명한 양면'처럼 한 데 있으면서 심우도를 통해서 말하고자하는 것과 같은데, 이는 수행의 시작과 결과인 '심우'와 '입전수수'를 한 자리에서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삼판(수행)은 동심원의 움직임처럼 끝없이 넓어지는 과정을 흔적으로 드러내는 나선형의 지향이다.
삼판(수행)은 그래서 '모든 결과는 비로소 과정이었다.'인 것이다.
삼(판수행)은 고타마 시타르타 붓다가 깨달은 법과 역대 선지식들이 가르친 법을 계개(繼開)하여 쓰는 혼속조사의 법과 그 가르침을 따라서 공부하는 것을 이른 말이라고 내가 정했다.
삼판(수행)은 내 것 잘 쓰는 일이고, 마을도량에 나투신 천백억화신 미륵고불과 어울리며 공부하는 마실수행이다.

어제, 산판 일을 하면서 삼판(수행)을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더니,
이 일을 같이 하자고 소개해준 장흥 농민회 김동현 선생님이 한 소식 일러주신다.

"힘들재라?""
"예~ 조금요, 안 쓰던 근육을 써서 그런지 팔뚝 근육이 뭉치기는 하네요."
"......"
"......"
"그나저나 애를 봐주려면 언제까지 봐줘야 하는 줄 안가요?"
"......"
"애 엄마 올 때까지 봐줘야 하는 겁니다."
"뭔 뜻이 있는 말씀 같은데 무슨 뜻이예요?"
"이 일 끝날 때까지 계속 와서 일해야한다고요."
"일로 뭉친 근육은 일로 풀어야 한다는 건가요?"
"일 다할 때까지 와서 일 하시라고요."
"아~ 예. 그래야재라~ 그럴랍니다."

비가 올 때까지 기우제를 지낸다는 인디언 기우제가 떠올랐고,
'공부하다 죽으라'는 선지식의 지향도 떠올랐다.
때마다 떠올리는 '모든 결과는 비로소 과정이었다.'는 여전히 당연하였다.

산은 가파르고 비탈은 험한데 베어 놓은 나무는 아직도 사방에 널려있다.
늪처럼 발이 빠지고 흔들거리는 너덜겅에서 뾰족한 돌 끝을 겨우겨우 밟고 피하고나면 넝쿨이 발목을 잡이 걸음을 더디게 하고, 그렇게나마 조금씩 움직일라치면 곳곳에 있는 시누대들이 디딤발을 미끄럽게 해서 중심을 무너뜨린다.

어제, 산판 일을 한 그 산의 바닥, 판이 그렇다.
오늘, 산판 일을 할 이 산의 바닥, 판도 이렇다.

온날 문화탁발행선의 만인불사는 산판 일을 마중물로 들여 삼판수행을 살펴보고 그 과정에서 공부하는 마실수행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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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 이, 삼, 사, 오
일[事]과 오[悟], 그 사이에서 하는 일~


Posted by 곡인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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