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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시대에 시인으로 산다는 것

곡인무영 2015. 9. 13. 23:56

은유



'은유'는 '경계'에 피어 있는 '소통'의 '꽃'이었다.

오행이 조화로운 아궁이골 장흥에
강화도에서 인삼장사를 하며 살고 있다는 시인 함민복 선생님이 왔다.

2015 장흥교육희망연대와 예우문화재단이 함께 여는 인문학강좌

-세월호 시대 시인으로 산다는 것-
-지금 여기에서 리얼리스트로 산다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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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평야 / 함민복

김포평야에 아파트들이 잘 자라고 있다.//
논과 밭을 일군다는 일은/가능한 한 땅에 수평을 잡는 일/바다에서의 삶은 말 그대로 수평에서의 삶/수천 년 걸쳐 만들어진 농토에//수직의 아파트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농촌을 모방하는 도시의 문명/엘리베이터와 계단 통로, 그 수직의 골목//잊었는가 바벨탑/보라 한 건물을 쌓아 올린 언어의 벽돌/만리장성, 파리 크라상, 던킨 도너츠/차이코프스키, 노바다야끼....../기와불사 하듯 세계 도처에서 쌓아 올리고 있는/이진법 언어로 이룩된/컴퓨터 데스크塔/이제 농촌이 도시를 베끼리라/아파트 논이 생겨/엘리베이터 타고 고층 논을 오르내리게 되리라/바다가 층층이 나누어지리라/그렇게 수평이 수직을 모방하게 되는 날/온 세상은 거대한 하나의 塔이 되고 말리라//
김포평야 물 괸 논에 아파트 그림자 빼곡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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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샘 / 함민복

네 집에서 그 샘으로 가는 길은 한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벽이면 물 길러 가는 인기척을 들을 수 있었지요. 서로 짠 일도 아닌데 새벽 제일 맑게 고인 물은 네 집이 돌아가며 길어 먹었지요. 순번이 된 집에서 물 길어 간 후에야 똬리 끈 입에 물고 삽짝 들어서서는 어머니나 물지게 진 아버지 모습을 볼 수 있었지요. 집안에 일이 있으면 그 순번이 자연스럽게 양보되기도 했었구요. 넉넉하지 못한 물로 사람들 마음을 넉넉하게 만들던 그 생가 미나리꽝에서는 미나리가 푸르고 앙금 내리는 감자는 잘도 썩어 구린내가 훅 풍겼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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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 함민복

(모든 경계에는 꽃이 핀다/)
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서/담장을 보았다/집 안과 밖의 경계인 담장에/화분이 있고/꽃이 전생과 내생 사이에 국화가 피었다/저 꽃은 왜 흙의 공중섬에 피어 있을까/해안가 철책에 초병의 귀로 매달린 돌처럼/도둑의 침입을 경보하기 위한 장치인가/내 것과 내 것 아님의 경계를 나눈 자가/행인들에게 시위하는 완곡한 깃발인가/집의 안과 밖이 꽃의 향기로 흠향하려/건배하는 순서인가/눈물이 메말라/달빛과 그림자의 경계로 서지 못하는 날/철책이 시들고/
나와 세계의 모든 경계가 무너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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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 / 함민복

물울타리를 둘렀다//울타리가 가장 낮다//울타리가 모두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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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 쉬기도 미안한 사월 / 함민복

배가 더 기울까봐 끝까지
솟아 오르는 쪽을 누르고 있으려
옷장에 매달려서도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으며
나 혼자를 버리고
다 같이 살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갈등을 물리쳤을, 공포를 견디었을
바보같이 착한 생명들아!
이학년들아!

그대들 앞에
이런 어처구니 없음을 가능케 한
우리 모두는....
우리들의 시간은, 우리들의 세월은
침묵도, 반성도 부끄러운
죄다

쏟아져 들어 오는 깜깜한 물을 밀어냈을
가녀린 손가락들
나는 괜찮다고 바깥 세상을 안심시켜 주던
가족들 목소리가 여운으로 남은
핸드폰을 다급히 품고
물 속에서 마지막으로 불러 보았을
공기방울 글씨

엄마,
아빠,
사랑해!

아, 이 공기, 숨 쉬기도 미안한 사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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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그 샘>에서 물을 길어 먹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다.
시는 그 '마을'에 있는 다른 것들의 경계를 찾아가 그 자리에서 같은 것을 찾고 소통하는 일이다.
시는 '경계의 자리[생각의 자리]'에서 피는 '은유의 꽃'이다.

詩는 운주사 석조불감[寺]에 안거 있는 쌍배불[言]이고,
詩는 운주사 천불천탑[千佛千塔]이다.
詩는 "바벨탑"이 된 언어의 벽돌이 아니고, "데스크塔"을 쌓은 이진법이 아니다.
詩는 절[寺-생각의 자리]에서 나오는 말[言]이고,
詩는 생각의 자리[寺]에서 나온 말로 쌓은 은유의 탑[塔]이다.

'0' 도와 '360' 도는 같은 자리라며
한 자리에 안거
움직이지 않은 채 움직이면서 심우[尋牛]와 입전수수[入廛垂手]를 하는
운주사 쌍배불
그래서
운주사 쌍배불이 안거 있는
딱딱한 돌을 깔고 세우고 덮어서 만든 불감[佛龕]은
'두께 없이 투명한 양면'이다.

詩는 생각의 자리에서 '생각의 도구[생각의 시대/살림/김용규]'를 쓰는 것이다.

'생각의 도구란 메타포라(은유), 아르케(원리), 로고스(문장), 아리스모스(수), 레토리케(수사)를 가리킨다.'
'생각의 도구들 중에서도 으뜸은 메타포라(은유)다. 원관념과 보조관념 사이의 유사성을 파악함으로써 생겨나는 은유는 사고와 언어의 근간이다.' (생각의 시대/살림/김용규)

수직으로 올리기 위해서 가까이에 있는 같은 것들을 모으거나
"언어의 벽돌" 같은 딱딱한 틀로 만들어서 쌓은 아파트나 바벨탑을 올리는 것이 아니라
아무것도 아닐 수 있으면서 무엇이든 될 수 있는 은유의 詩를 쓰고
거리가 먼 다른 것에서 같은 것을 찾아 잇고 연결하는 은유의 詩로 塔을 쌓는 일이다.

그래서
시인 안도현은 <양철지붕에 대하여>에서
"그래, 우리 사이에는 은유가 필요한 것 아니야?"라고 말했나보다.

그렇게
詩는 평범한 같은 점에 공감하면서 내 자리를 확인하는 것이고,
詩는 특별한 다른 점에 감동해서 우리 자리를 지향하는 일이다.

온날 문화탁발행선의 만인불사는 '세월호 시대'를 경계로 삼아 '생각의 도구'인 '은유'로 詩를 써서 '소통의 꽃'을 피우는 시인을 만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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