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여 능산리에 있는 烏石山오석산을 1991년부터 悟聖山오성산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곤수곡인 스승의 묘소가 있기 때문이다. 해발 180m인 悟聖山은 烏山오산, 烏石山오석산, 烏積山오적산이라고도 한다.
오성산 아래 복숭아밭 가운데 있었던 능산리 승묵법단을 처음 온 게 40년 전이다. 운전면허증을 따기 전 해이니 1984년이겠다. 김일주 노점전사와 강해성 점전사가 주재로 있던 초가집 법단이었다. 강해성 점전사 짐을 실은 포터 트럭 가운데 앉아 천안을 거쳐 차령휴게소에서 쉬고 공주를 지나 부여읍 능산리까지 무려 다섯 시간도 넘게 걸려 도착했다.
검개 그을린 부엌의 낮은 부뚜막 아궁이에서 가마솥에 밥을 짓고 숯을 꺼내 그 위에 냄비를 얹고 오다가 산 손두부를 넣고 끓여준 김치찌개로 저녁 공양을 했는데, 그 풍경과 맛을 지금도 잊을 수 없다.
1989년 1월 말에 군 제대를 하고 부여 왕릉 맞은편에 있는 오성산 승묵법단에서 1991년 이맘 때까지 살았다. 산에 잣나무 묘목을 심어서 해마다 여름이면 예초기를 메고 온 산을 더듬고 다녔었다. 다행히 벌에 쏘인 건 몇 번 뿐이었다. 그 잣나무들이 지금은 아름드리가 되었다. 예초기 업력이 꽤 오래되었다는 말을 하려고 하는 말이다.
추석이 앞이고 추석 쇠고 열흘 뒤면 昆水谷人곤수곡인 스승의 反白成道日반백성도일이다. 준비를 하느라 종단 捨身修行者사신수해자들이 벌초 울력을 하려고 모였다. 40년을 봐온 도반이 있고 30년 20년 10년을 봐온 도반들이다. 오늘 하루만 하는 줄 알았는데, 이곳 부여에서 이틀 장성 방장산 진덕법단 수양원에서 하루를 더 하는 이박삼일 일정이다.
이나마 오늘 장흥 일정을 취소하고 왔는데 내일은 다시 장흥 일정을 봐야해서 모레 장성 방장산 진덕법단 수양원 울력은 함께할 수 있겠다. 이 일이 우선이어야 하는데 어쩌다 장흥 일정을 우선하고 있다. 어쩌겠는가 흐름대로 해야지.
군데군데 어린 소나무가 보인다. 예초기를 돌리다가 흠칫 놀라서 멈추고 가만히 들여다 봤다. 어떤 것은 올해 나온 것이고 어떤 것은 이삼년은 자란 것이다. 작년에 누군가도 나처럼 멈칫했었겠구나 생각을 하니 같은 마음 같아서 뿌듯하다.
그나 할거에 안거 다니다 보니 안거에 안거 다니던 때에 비해서 풍경을 보는 관점이 달라졌다. 안거에서는 안 보이던 것이 할거에서는 보인다. 시야가 달라진 것이다. 시선의 층위가 달라지니 다른 층위의 풍경이 보이는 것이다.
관점은 같다고 하더라도 관점의 층위에 따라서 보이는 풍경이 있고 안 보이는 풍경이 있는 것이다. 내가 태어났다는 불갑(선들)을 지날 때 그랬다. 안거에 안거 다닐 때는 안 보였던 불갑저수지와 불갑천 그리고 선들이 할거에서는 한 눈에 보였다.
각자 흩어져서 예초기를 돌리지만 새참을 먹을 때 잠깐 쉴 때 모여 있으니 말 없이들 있어도 좋다. 흐믓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