觀燈
觀燈(관등)
봄녘, 남끝으로 가면 남포가 있다.
남포에 가서 바다를 향해 앞을 보면
작은 등잔처럼 생긴 섬 하나가 한눈에 쏙 들어온다.
소등섬이다.
돌바위 소등섬에는 소나무 몇 그루 있는데
상투처럼 솟은 모양이 꼭 등잔의 심지 같다.
소등섬 소나무심지에 '촛불' 같은 '햇불'이 켜져서 아침이다.
이 섬에는 남쪽 바다를 향해 기도하는 할매 한 분이 있다.
비가오나 눈이오나 바람이부나 한결 같은 자세로 기도하는,
소등할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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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향(南向) / 이문재
그때는 그 사람이 남쪽이었습니다
그때는 그 한 문장이 정남향이었습니다
덕분에 한 시절 잘 살아낼 수 있었습니다
봄이 이듬해 봄 만나기를 서른몇차례
많은 시대가 한꺼번에 왔다가 사라졌습니다
오래된 미래는 더 오래가 되었고
온다던 미래는 순식간에 지나가버렸습니다
꽃 진 자리에서 하늘을 보며 생각합니다
나는 지금 누구에게 남쪽일 수 있을까요
우리들은 어느 생에게 정남진일 수 있을까요
그때는 여기 저기 남쪽이 많았습니다
더불어 함께 남쪽을 바라보던
착하되 강하고 예민하되 늠름한 벗들이
도처에서 서로 부등켜안고 그랬습니다
남쪽은 저기 여전히 맑고 푸르러 드높은데
이 겨울이 봄 여름 가을을 건너뛰어
다음의 긴 겨울을 만나고 있습니다
처음 같은 마지막처럼
<혼자의 넓이,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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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심하면 지나칠테지만 자세히 보면 이 소등할매 형상이 독특하다.
손바닥을 맞대는 합장이 아니라 왼손으로 오른손을 감싸쥔 모양이고,
무릎은 꿇고 엉덩이는 들어올려 長跪(장궤)를 한 채 기도하는 모습이다.
사실 소등할매의 이런 기도자세와 손모양이 나에게는 익숙하다.
어릴 때부터 인덕법단(일관도, 국제도덕협회)에서 익힌 모양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히려, 나는 이 소등할매 모습이 낯설고 궁금하다.
이 할매 형상을 만드신 분은 누군지, 어느 할매를 본으로 했는지.
아, 그리고 小燈섬이라고 부르는데 나는 굳이 素燈섬이라고 부른다.
소등섬에서 심지처럼 장궤를 한 채
남쪽을 바라보며 觀燈 기도하는 소등할매는
누구든지 옆에 오라고
자리를 내어주고 뒷자리도 내어준다.
觀燈하듯 정남을 바라보자고.
觀燈하듯 앞을 오래오래 보자고.
기도하자고
素燈할매가 온 마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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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등할매를 곁에 두고싶어서 민에게 부탁했다.
https://www.instagram.com/p/CdAk62WLrw4/
향꽂이 목각 소등할매가 왔다.
향을 감싸쥔 소등할매를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
觀燈




